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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팁(소설)/靑玉

靑玉. #4 비밀의 정원.

   미수반 × 여우비 크로스오버

   날조가 치사량 이상으로 들어있습니다. 주의!

   본 이야기는 글쓴이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이며 실제 설정과 다른 부분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시야 전환 및 시간선의 흐름은 점 3개의 구분선으로 통일합니다.

 

추천 BGM ::https://www.youtube.com/watch?v=5vvH2vxFR4Q

 

靑玉

비밀이란 대부분 추한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숨지 않는다.

오직 추한 것과 어그러진 것만 숨을 뿐.

|루시 모드 몽고메리

 

 

 

제 4막.
비밀의 정원.

 

 

   "… …. 으, 여기가 대체 어디…,"

   야…?
   공룡은 머리를 짚으며 주위를 살폈다. 취기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여전히 깨질듯한 감각에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낀다. 그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으려 노력한다. 아무래도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렸군. 그런 감상만이 그를 덮었다. 그저 좀 취한 상태로 형사팀을 보면 뭐라도 알려줄까 싶어서 했던 행위인데, 뭐 이렇게 되나. 역시 세상은 생각 이상으로 무계획적이다.

   공룡은 자신이 앉아있는 장소를 확인했다. 반쯤은 벗겨져가는 가죽소파, 적갈색의 키 낮은 테이블, 녹색 부직포의 책상 덮개 위로 유리가 한 차례 더 깔려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장미 한 송이가 꽃병에 꽂혀 있었고, 그 너머로는 단단한 회백색 철제 문이 달려있었다. 천장의 전구는 백열전구. 그 주위로 나방이 날아 지저분함을 더했다. 꿉꿉한 향이 먼지 향이 코를 찔렀으며, 벽은 시멘트 까진 지하의 느낌이 낭낭히 들었다.
   그 모든 게 이질적이다. 현 상황을 이르자면 엄연히 납치였다. 납치라 함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자신들의 범행을 외부인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 피해자의 손과 발을 등으로 묶어 자유도를 최소한으로 한다. 만일 대화를 하고 싶었다면 찾아오면 될 문제. 왜 이렇게까지 일을 키운 걸까? 공룡은 끝내 이런 생각마저 했다. 혹시… 나, 만화 주인공인가? 퍽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럴 수 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까지 이런 생각을 퍽이나 했다.

   "아, 맞아. 수사학의 별!"

   그는 무작정 주머니를 뒤졌다. 잊혀진 물건을 찾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 들지 않는다. 적어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전제조건 하에서. 그는 왼쪽, 그리고 오른쪽 주머니를 뒤적였다. 무엇도 잊지 않는다는 능력은 퍽 좋은 능력이었으나 그것은 반복적으로 기록되는 것과 같아 어제 왼쪽 주머니에 수사학의 별을 넣고, 그저께 오른쪽 주머니에 수사학의 별을 넣었다 치면 오늘은 양쪽에 수사학의 별이 들어있는 착각을 하게 됨과 같다. 그는 결국 오른쪽 주머니에서 수사학의 별을 찾았다. 급히 쥔 수사학의 별은 여전히 금으로 도색된 기이한 별 모양이었다. 도금인가? 한 때는 그렇게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수사학의 별!"

   그의 머릿속에 잡다한 지식이 들어선다.

   '압생트란 스위스에서 유래된 술의 한 종류입니다. 증류한 알코올에 아나스(anise)와 회향(fennel)이라는 향신료와, 향쑥(wormwood)이라는 허브계 약초를 말려 부숴넣은 후 다시 증류한 술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무색투명한 색을 내기 때문에 여기에 히솝(hyssop), 레몬밤(lemon balm), 로만쑥(roman wrmwood) 등의 허브를 추가로 넣어 색을 침출 시켜 녹색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압생트의 주원료인 쓴 쑥에 포함된 투존(thujone)이라는 성분이 신경에 영향을 주므로 사람이 압생트를 음용하면 환각을 보게 되고 장기 복용 시 시신경이 파괴될 수 있습니다. 현재 압생트는 스위스 연방 식품 규정에 의거해 *판매가 금지되어있습니다.'
   "… 그 망할 것이 판매 금지 음주를 팔았다고?"
   *압생트 판매 금지 : 1910~2005년

   공룡은 헛웃음 지었다. 허, 뭔 작가 어쩌고 그러더니 찔려서 그랬나. 말꼬리가 길면 수상하다던데. 처음 보자마자 수사학의 별을 꺼내 든 걸 그랬다. 곧장 도망칠 수 있게. 온갖 중얼거림을 동반하며 정보를 취합한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중요하지 않음을 공룡은 충분히 알고 있다.
   문 밖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투박한 굽소리. 평범한 또각또각하는 소리와는 느낌이 다르다. 그 상대를 찾아 나서야 한다. 그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떤 인물인가. 상대를 알아내기 위해선 무지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그는 곧장 수사학의 별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이번엔 왼쪽 주머니이다. 그리고 소파에 고개를 떨어뜨린다. 기댐보다는 기절에 가까운 제스처에 그 누구도 그가 방금 깨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없을 것이다.

   끼익,
   둔탁한 철문이 열렸다. 사람은 적어도 넷. 발소리가 겹쳐 그 이상은 알 수 없다. 1대 다수의 그림인가. 퍽 안 좋은 상상이 그림처럼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이 장소에 갇힐 존재는 그가 아닌 라더가 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공룡은 수만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그들이 만일 마약업자, 혹은 판매 금지 음주를 판매한 유통업체라면?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능한 경찰이 아니라 자신의 배를 불리울 인질이라면?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지? 인원 중 한 명의 멱을 쥐어 틀고 바닥으로 꽂아야 하나? 총은? 맞아. 총. 자연스럽게 손 끝을 허리춤에 가져다 댄다. 엄지가 허리춤에 닿았을 때 생각한다. 없다. 권총은 빼앗긴 게 분명하다. 이제 어쩌지?

   "경장님은 언제 일어나십니까?"
   "나야 모르지. 워낙 독한 거라 자네도 마시고서 바로 기절했잖아?"
   "그건 소싯적 이야기지 않습니까."
   "엊그제 이야기기도 하지."

   공룡은 철문이 열릴 때부터 알았어야 했다. 둔탁한 구두 소리, 사람은 적어도 넷. 형사 1팀의 인원은 여섯, 그 팀의 경위님 구두가 고동빛 통 구두로 굽 소리가 둔탁히 들렸다. 딱딱한 어조의 박 경사, 능글맞은 최 경위. 김 경사와 주 경장, 서 경장과 우 경장이 함께 할 것이 틀림없다. 목덜미가 오싹하게도 서늘해졌다. 특징, 목소리, 성격. 그 모든 것이 완벽히 형사 1팀이었다. 심상치 않다 했더니 기절한 바와 연결이 되어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참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어-이. 언제 일어나세요?"
   "주 경장, 자는 사람 건들지 말랬잖나."
   "경위님. 하지만 벌써 3시간째입니다~"
   "그리고 박 경사님은 8시간을 주무셨죠."
   "소싯적 이야기라 그랬잖습니까."
   "소쉿좍 이얘기라 구랬쟎숩니꺄~."
   "주 경장, 조용히 해."
   "너무합니다."

   그들은 시시덕덕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에 기절한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로 말이다. 공룡은 기척을 확인한다. 그들이 자신을 죽일 의도로 데리고 온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말로 풀어낼 수 있음에도 강압적인 방법을 취한 것은 필시 은폐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 볼 수 있다. 가장 다행스러운 점은 그들이 라더와 같은 열혈 경찰을 바란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가 범한 일들이 올바르게 맞아떨어졌다는 점. 그 모든 것이 행운이라 말할 수밖에 없으리.

   공룡은 눈썹 사이를 찌푸렸다.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공룡은 그 자연스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수사반의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현재 공석의 상태로 한참을 비워둔 잠뜰의 탓이라고 해야 할지.

 

   "으-,"

   "오, 일어나셨네. 안녕히 주무셨어요?"

   "으, 어. 아…. … …. 어디…?"

 

   목소리는 미묘한 떨림을 갖었다. 연기를 배운 적이 없으니 미숙하고, 부모의 간섭이 과하지 않았으니 완벽히 잠긴 목소리 따위를 흉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공룡은 자신의 스펙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그가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어절을 자른다. 목소리로 커버가 안되면 단어를 쪼개는 것이다. 그들은 그가 정말 막 일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범했던 모든 장면을 자르고 겹치고 붙인다. 미숙하고 불확실한 아직 미완성의 가능성만을 갖은. 무지한 이를 연기한다. 그는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은 불완전하기에 완전하다. 그것을 전제로 깔고 있음을 형사 1팀은 모른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별 건 아니에요. 저희의 진짜 회의실~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아…, 네 …?"

   "아이고, 이 분. 아직 잠이 덜 깨셨네~. 경사님~ 차 하나만 타드려야겠어요~."

   "이런 건 보통 막내가 하지 않나?"

   "선비들이 지대하네요. 모두 같은 생각?"

   " …."
   "아, 알았어요. 내가 하면 되잖아."

 

   주 경장은 문 밖으로 나갔다. 공룡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퍽 그렇게 보였다. 공룡은 고개를 숙이는 순간 자신의 위치를 정리했다. 자신은 현재 아무것도 모르는 경장의 위치. 그러므로 그들에게 순순해질 필요가 있었다. 또한 총기 등의 모든 물리성을 띄는 물건은 빼앗긴 지 오래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백과사전, 네 뛰어난 머리로 그들에게서 목적을 빼앗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알아내야만 한다.

 

   "그래서 공 경장님."

   "아, 그…."

   "접니다. 최 경위."

   "아, 네."

   "많이 혼란스러우신 모양이네요. 대화를 하고자 불러냈습니다만 괜찮으시겠어요?"

 

   그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표정은 여전히 찝찝하고,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설명을 호소했다. 퍽 그런 척했다. 그의 모습이 타인에게 들어올 즉시, 그가 그다지 완벽한 형사가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바란 형사가 정말 이러한 것이라니. 공룡은 기가 차기 마련이었다.

 

   " …. 저도 설명을 들어야겠네요. 왜 이런 방식을 취하신 거죠?"

   "저희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타 부서의 이들이 우리의 대화를 들으면 안 됐거든요."

   "…. 대체 왜… …?"

   "일단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입니다. 최근 경장님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경장님께서는, 사건을 해결할 욕심이 없으신 것이죠?"

   "…. 어째서 그렇게 판단하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야, 어떤 형사가 미쳤다고 수사기간 중 음주를 지속합니까? 저희가 모를 줄 아셨나요?"

 

   걸렸다. 공룡은 그리 생각했다. 반쯤 도박이었는데. 저것을 걸려주다니. 퍽으로도 안심스럽다.

 

 

 

   공룡은 백과사전을 쫓아 나섰다. 그의 수십, 수백, 수만의 시간을 흘러 축적된 한가득 모아 담은 책장이 펼쳐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는 정보를 선별한다. 이번에 필요한 문맥은 다른 것이 없다. 그가 찾아낸 과거의 정보는 대부분 수현과 잠 경위의 조언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의 말을 되짚는다. 날은 퍽 소란스러운 4월 12일. 벚꽃이 피어나야 할 시기에 봄비가 내려 피지 못한 꽃잎이 바닥을 적실 시기였다. 그 무렵 이들은 미스터리 수사반을 결성한 지 약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수현은 덕개와 공룡을 불렀다. 그는 이번 기회에 취초의 기본을 알려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공룡은 그 일이 퍽 유쾌하진 않았다. 별로 재밌지도 않고, 흥미롭지도 않으니.

   수현은 이야기했다. 취조의 가장 기본은 상대 스스로가 위험에 빠졌다는 인식을 주는 것, 그것으로 자신이 고립된 상태임을 느끼게 하는 것. 이라 말했다. 그와 동시에 취조자는 권위를 보여줌으로써 상대를 더욱 확실하게 인식시킨다. 그것은 수사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허나 위협은 언제나 먹히지 않지."

   "아, 경위님."

   "수 경사. 자네는 취조실에서 좀 멀어질 필요가 있네."

 

   잠 경위는 셋이 앉은 소파에 들이밀 듯 자리를 잡았다. 수현의 잠시 말이 끊어졌다. 수현은 잠 경위의 등장이 상상 이상으로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덕개는 그것을 눈치챌 리 없었고, 공룡은 그 장면의 모든 것을 방관했다. 자신의 능력이 퍽 뛰어나기도 했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꽤 많이 지루한 것도 한 몫하였다. 또한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라면 이런 일 없이도 타개할 수 있지 않은가. 지식이란 그 정도로 뛰어난 인재라는 뜻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공룡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위협 말고 뭐가 필요한대요?"

 

   공룡은 퍽 오만한 사람이었다. 살아생전 적어 내릴 수 있는 신화란 신화는 모조리 10대에 적어 내었다.

   10대 시절 그는 퍽 못 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시골 촌구석에서 태생을 기록한 그는 한평생을 5평짜리 집에서 벗어난 기억이 없다. 공부 환경은 열악했고, 주위 친구들이 딱히 의욕적인 사람들도 아니던 유년시절. 그럼에도 아이는 교내 1등, 학력평가 1등, 우수상이란 우수상은 모조리 휩쓸고, 이 달의 천재 학생이라는 이름 아래 IQ 187의 어마 무시한 지능의 보유자로 어린이 잡지에 실려본 기록이 있다. 보조 장학금은 단연코 따냈고, 수능은 1등급. 집안 사정에 의해 어쩔 도리없이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아마 갔다면 수석 졸업 정도는 따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완벽한 성공신화 속, 그가 자만감에 넘쳐 경무부를 때려치우고 곧장 수사팀으로 전향했던 이유도 그의 인생사가 전반에 녹아들어 할 수 있는 선택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오만한 이에게 위협 따위는 무섭지 않았다. 말로 하는 재치를 이길 순 없으나 그가 하는 말의 전반을 기억한다.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도는 기필코 기억하여 문장의 엇박을 알아채는데 특출 나다. 머리를 빙빙 꼬고 주어를 빼어 비유적 표현을 거듭하는 이와도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고, 말에 따라서 그는 수현이 없을 때 대신 취조실에 들어가는 것 마저 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언제 어디서든 쉽게 들린다. 그것은 경찰에게 있어 최고의 정보통 아니겠는가.

 

   "수 경사는 알 테지. 약한 척하는 걸세."

   "약한 척이요?"

 

   덕개는 되물었다. 수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도리저었지만 잠 경위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약하게 보이는 전술을 말하는 것이지. 그들이 너희를 얕잡아보도록 말일세. 그럼 뭐가 좋은데요? 덕개는 순진하게 되물었다. 공룡이 관찰한 결과 덕개는 수사반 내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이다. 그것이 정의라는 뜻은 아니다. 약자의 편에 서서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는 것. 누군가에게는 위선자라 불리기 딱 좋을 그 위치에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수현은 덕개의 말에 짧게 웃었다. 용의자가 실수하기를 바라는 거야. 다만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지. 결국 대답하고만 수현은 이내 덕개에서 공룡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다. 살갑게 웃어 보이는 눈동자가 퍽 사람 좋아 보였다. 그런 그의 속에 가장 열정적인 정의가 숨어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혹 잠 경위라도 말이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선으로 직결되는 것을 바랐다. 수현, 그러니까 수현 경사는 타인을 말로 현혹해서라도 정의를 구현하고자 한다. 현실적으로 가장 평화적인 방법일지도 몰랐으나… 공룡은 그렇게 보진 않았다. 가장 마주치기 위험한 인물. 뭐 그런 걸로 봤으면 몰라.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경찰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니 내가 찾아온 것 아니겠나, 수 경사. 잠 경위가 장난 스래 이야기했다. 능청 스래 이야기한 저 말이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구태여 쓰지 말라는 경고와도 같았다. 그럼에도 그것이 언젠가는 쓸모가 있으리라는 충고이기도 했으므로. 공룡은 잠 경위의 말을 상기시킨다. 위험을 감수한다. 그는 스스로를 감수하고 나아가는 특이 종족 같은 것이다. 자기희생적이라 이야기하는 이 일족은 의도가 어찌 됐든 스스로를 감내하는 것에 더욱 필사적인 인물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테지. 잠 경위의 말에 덕개가 눈을 반짝인다.

 

   "그럼, 저도 약한 척하면 되는 건가요?"

   "덕-, 경장은 이미 약한 것 같은데~..."

   "음, 덕 경장을 향한 올바른 조언은 아니었군."

   "아, 둘 다 뭐예요!"

 

   잠 경위는 공룡의 등을 두어 번 토닥인다. 그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이 마치 자신인 것 마냥.

 

   "머리가 좋다고 모두 현자가 아니지."

   "지금 저보고 하시는 말씀이세요?"

   "자네 아니면 누가 현자라 할 수 있겠나?"

 

   잠 경위는 그렇게 자리를 털어냈다. 옷무새를 정리하고 그렇게 멀어져 갔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마친 듯 등을 보인체 문을 열었다. 덕개는 그 모습이 경찰답다 이야기했다. 퍽 부럽다는 이야기도 곁들이는 것이 덕개의 롤모델은 누가 무어라 하여도 잠 경위가 분명했다. 그런 덕개에 수현은 짧게 웃었다. 어쩌면 잠 경위에게 조금 조심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공룡, 공룡은….

 

 

 

   "제게 무엇을 바라시나요?"

   "공 경장님은 말이 통해서 다행입니다. 저희는 이 사건이 은폐되길 바랍니다."

   "은폐라, 어째서죠?"

   "저희 또한 일탈인 셈이죠. 당신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들의 말은 간결했다.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말아 달라.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은폐하고 침묵하여라. 그 말은 확실히 공개적인 장소에서 할 수 없었고, 나아가 멀쩡한 방식으로는 대화가 진행될 리 없었다. 그는 옅게 웃었다. 그래서 제 총을 빼앗은 걸까요? 공룡은 허리춤을 매만졌다. 적어도 경장이라는 직급을 붙잡고 이 정도의 문의는 넣을 수 있지 않은가. 그의 말에 최 경위는 고개를 주억였다.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놀란 경장님께서 저희를 향해 무력을 행사하신다면 저희도 손 쓸 도리가 없으니 말입니다.

   공룡은 그들의 말을 재배열한다. 명백한 위선이었다. 옅은 미소에 걸린 여유를 공룡이 눈치채지 못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들은 제안이나 협상 따위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제안을 받지 않으면 한 순간에 그 또한 실종 상태로 만들지도 모르지. 범인을 알고 있다? 그런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범인에 대한 정보 모두를 은폐할 작정인가요?"

   "그렇다기 보단…. 범인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최 경위는 찬찬히 다리를 꼬았다. 손을 꼬고, 턱을 괴었다. 그는 퍽 여유로운 사람으로 보였다. 팀장이라는 이름보다 리더에 가까운 군주상이었다. 그의 행동은 느리고 위압감 있게 행해진다. 그 주위에서 모두가 침묵을 고했다.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않는다.

 

   "구태여 찾을 이유가 없죠. 그들이 하는 행위는 범죄가 아니니까요."

   "살인사건임에도 불구하고요?"

   "죽은 이들이 살아있던 사람이던가요?"

 

   그는 그렇게 음절을 정돈시켰다. 공룡은 말문이 막혔다. 그가 도통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말하는 어절마다 엉뚱하기 그지없다. 그러니까, 죽은 이들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흐음, 딱히 말로 설명하기 애매하군요. 차라리 구경을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겁니다."

   "구경…, 이라고요?"

 

   최 경위는 박 경사에게 손짓했다. 박 경사는 그 작은 제스처도 놓치지 않는다. 곧장 고개를 숙여 경위의 말을 귀담아듣는다. 그 모습이 가히 환상적인 페이스다. 고개를 숙인 박 경사의 귓가에 최 경위가 귀띔하기 시작한다. 말은 최 경위만이 지속적으로 하였고, 말이 끝날 무렵 박 경사가 공룡에게 시선을 두었다. 퍽 단조롭고 순차적인 움직임에 경직된 것은 역시나 공룡일 수밖에 없더라. 공룡은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입력된 음절을 전하는 로봇과도 같이 느껴졌다.

 

   "일어나시죠. 내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공룡은 박 경사를 따라 자리를 이동한다. 철문을 밀고 나서자 사람 두엇 다닐 퀴퀴한 지하통로가 등장했다. 퍽 침침하게 조명도 누리끼리하여 지하실 분위기를 감출 생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벽을 살짝만 쓸어도 먼지가 검지 가득 묻어났다. 손을 가볍게 털어낸다. 구경이라는 말이 퍽 의심스럽다. 공룡이 확인했을 때, 이 안에서 볼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구경시키겠다고? 범인이라도 구경시켜보겠다 이건가? 공룡은 가정을 거듭한다. 형사 1팀이 범인인가? 혹은 공범인가. 아니면 방관자인가. 은폐해서 무엇이 낫다고. 공룡은 생각을 거듭했으나 무엇도 알아낼 수 없다. 그럼에도 가정으로 친다면, 가장 유력한 것은 역시나 공범일 것이다.

 

   "이곳입니다."

 

   박 경사는 복도 끝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사이로 여럿의 목소리가 겹쳤다. 밝고 생기 있는 목소리보다는….

   어느 한 여인의 목소리가 찢어지도록 울려 퍼졌다. 살려주세요.

 

   "… …. 이게, 이게 무슨…?"

   "딱히 경장님이 생각하시는 일은 아닙니다. 정신적 치료에 가깝죠."

   "병원장도 아닌 여러분이 말입니까?"

   "꼭 의심이라도 하시는 것 같네요. 하지만 진실입니다. 그들이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잖습니까?"

   "정상이 아니라면 가축 취급해도 괜찮다는 의미로 밖에 안 들리는군요."

   "가축 취급이라니, 말이 심하십니다."

 

   박 경사는 딱딱한 표정 그대로 여전히 철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들어가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같았다. 공룡은 이곳까지 와서 도망칠 수 없었다. 내부 지도도 모르고, 나가는 통로도 모르니 더더욱 도망치기 힘들었다. 결국 공룡은 그들이 바라는 대로 움직인다. 문고리를 잡고 미세히 열려있는 철문을 밀어 본다. 내부는 퍽 컴컴하다. 고립형 방이 몇 개고 있는데, 복도에 달아둔 전구 하나가 전부였다. 복도의 끝, 벽에는 문양이 하나 걸려있다. 푸른빛 불꽃의 형상이다. 공룡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성화의 불꽃과 닮았다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체 무엇을 구경시키려 하시는 건가요?"

   "경장님께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일은 인류를 위한 일입니다."

   "인류를 위한 일이 이다지도 비인도적일 수 있습니까."
   "비인도적이라뇨. 모두 자발적인 지원을 통해 온 것입니다."   "… …. 자발적 지원이요?"

 

   공룡은 재차 되물었다. 자발적, 그리고 지원. 지금 이 방에 갇혀있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왔다면 지원이라는 말은 붙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가족, 혹은 가까운 이가 그들을 보냈다는 뜻이 된다.

 

   "네. 자발적 지원이요. 그들은 특별한 조건 속에서 찾아오게 됐습니다."

   "조건이라면?"

   "… …. 그들은 갖어선 안 될 힘을 갖은 자들입니다."

 

   공룡은 박 경사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은유법이나 과장법 따위가 아닌 것 같았다. 말 그대로 갖어서는 안 될 힘이라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런 힘이 어디에 있는가? 공룡은 본인 스스로가 갖은 힘마저도 과장된 것이라 생각했다. 간간히 존재하는 세상에 존재하면 안될 것 같을 수준의 능력을 지닌 사람.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미스터리 수사반임을 공룡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공룡은 본인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미스터리 수사반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갖어선 안될 힘이란 천지에 없으며,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뜻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그 가능성을 짓누른다는 소리 아닌가.

 

   "그들의 힘은 본디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 하면?"

   "인류의 대척점에 있는 이들을 위한 힘이지요."

 

   그들에게서 힘을 빼앗고 있을 뿐입니다. 저희는 즉, 인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말할 수 있지요.

   그의 말에 공룡은 입을 다물었다. 상당히 미친놈들의 모임이다. 그들은 본인 스스로가 결론적으로 그 힘을 갖은 이에 대해서는 단 한치의 의문도 갖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타인의 가능성이나 존중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둘러보시면 말씀하십시오. 대답은 그 후에 들어도 충분합니다."

 

   박 경사는 자리를 무른다. 공룡은 심란함을 가다듬고 주위를 확인한다. 앞으로 주의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은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돌아가자마자 곧장 그들을 경찰서에 밀어 넣는다. 그 사이 저들은 힘에 대해 운운했으므로, 공룡은 자신의 수사학의 별을 꺼내 드는 일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함을 깨닫고야 만다. 소리 내서 읊어대거나 그들의 앞에서 멋대로 사용하기엔 무리가 생기고 말았다.   일단 공룡은 가장 먼저 그를 반겼던 푸른 불꽃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그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단체라면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청혼(靑魂)교의 마크입니다. 본 교단은 1987년 개설되어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일전 청혼교의 소탕을 위해 대대적으로 조사가 착수되었으나 무산된 기록이 존재합니다. 신에 대한 믿음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으며, 사이비적 행위로 납치 및 인신공양의 흔적이 남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단의 정확한 인원은 추측이 불가능하나 이전 기록을 통해 약 1400명의 단원이 존재하며 전국적으로 뿌리깊게 남아있는 사이비 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 …."

 

   공룡은 침묵했다. 아마 이곳에 갇힌 이들, 그리고 현재 수사를 착수 중인 이들 모두가 사이비적 어휘로 제물이었다는 소리다. 제물. 살아있는 이를 바치고 투기했다 보는 것이 마땅할까. 그들의 행위가 지독히도 잔인하다. 그리고 그 안에 경찰이 존재한다. 정말 소설처럼 이러한 일에 경찰이 가담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경찰 당국은 사회적 규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제적인 조사에 착수하고 경찰 내부에서는 사이비에 대한 암묵적인 규칙이 생길 것이다. 공룡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아마 그럼에도 교단의 뿌리를 뽑아낼 순 없다. 잠입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공룡은 방들을 확인한다. 철문에 쇠창살로 작은 창가가 눈에 띈다. 지하실을 개조한 흔적이다. 곧장 조사를 착수한다면 이들 모두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뒤의 일은? 대대적으로 뿌리를 뽑아야 하지 않은가. 현재 보이는 것들이 빙산의 일각임을 공룡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홀로 일에 뛰어드는가? 그것은 위험하다. 그렇다고 수경사에게 연락을 하는가? 그것 또한 위험하다. 증원을 부른다면 형사 1팀이 눈치챌 것이고, 홀로 뛰어들기에는 사건의 스케일이 남다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공룡은 고뇌했다. 그리고 고민했다. 그 비상한 두뇌로 정답을 알아내고자 했다. 답을 탐미해야만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정답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하면 한다. 뇌를 괴롭히고, 또 압박한다. 궁지까지 몰렸다는 감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안에서 답을 꺼내야 다음 일을 진행할 수 있다.

   …. 허 씨. 망했네. 공룡은 헛웃음 지었다. 밀어붙임에도 결론을 정할 수 없다. 그 무렵,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그곳에 있는가, 공 경장?

 

   "… …. 잠 경위님?"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군. 다행이네. 그나저나 자네, 잡혀온 건 아니지?"

   "두 발로 들어왔으니 괜찮지 않습니까."

   "골 때리군. 자네 그러다 빨리 하직하는 거 알고 그러나. …어휴, 그래. 뭐 사지 멀쩡하니 이런 말은 넘겨두지."

   "그건 그렇고 잠 경위님은 괜찮습니까?"

   "나는 뭐 머리 까진 거 말고는 문제없네."

   "머리가 까지셨습니까?"   "저놈들이 퍽 난폭하게 다루니… 나원 참."

 

   공룡은 잠 경위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안심됐다. 오랜만에 마주한 목소리라 그럴까. 지금 당장이라도 잠 경위를 풀어내고 도망치는 것이 1순위가 아닐까. 그리 생각했다. 공룡의 고민에 방 너머에 있던 잠 경위가 창문으로 손을 들이밀었다. 그곳에 있다면 가까이 좀 와보게. 뭣하러 이러십니까. 그리 읊조려도 다가가는 것은 서로가 오랜 부재로 마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 분명했다.

 

   "나는 괜찮네. 사건을 해결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어라 가리켰지?"

   "… 형사의 위험은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내 이번 위험은 필연적인 것일세. 이해하는가?"

 

  잠 경위는 공룡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시야가 닿지 않았음에도 그 둘은 서로를 위로한다. 잠 경위는 멀리 떨어진 이들에게도 안부인사를 전하라 말한다. 그리고 구태여 자신을 구하러 올 필요는 없다. 현재까지 실행범이 이 장소에 나타난 전적은 없다. 그리하여 저 형사들을 잡아넣어도 그들은 사건의 범인이 될 수 없다. 잡는다면 더 윗놈을 잡아야 하는 법. 잠 경위는 침착히 지시했다. 자네가 해야 할 일은 다를 것 없네. 자신의 수사 구역에서 철저히 수사하는 것이지. 다만 이번에는 공조 수사가 아닐세. 수사권을 양도를 받아 형사팀이 하고자 했던 것들을 파해치게. 그리고 되도록이면 빨리 돌아오게나. 보다시피 납치된 이들이 한 둘이 아니라서 말이지.

   공룡은 잠뜰의 말에 침묵했다. 수사권 양도. 다른 말로는 강탈에 가까웠다. 명백한 이유 없이는 수사권을 가져오기도 힘들었고, 영화나 만화 속에서나 간간이 나오는 장면을 행하라 전한 것이다. 그것이 일으킬 파급력은 감내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 …. 수사반에 양도가 가능할까요?"

   "수사반이라 부르는 걸 보니 미수반은 남아있는 모양인데, 뭐가 문제인가? 서장님이 그 정도는 이해하는 사람일세."

   "그게 아니라, 경위님이 사라지셨으니 대체 누가… …."

   "지금 자네 팀의 리더가 누구인가?"
   "네?"

   "내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이가 누구냐 묻는 것일세."

   "… …. 각 경위님이요."

   "그렇다면 그를 믿으면 되는 일 아닌가."

 

   퍽 믿음직스럽진 않다만. 창 너머로 잠 경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나저나 그가 경위라. 돌아가면 재밌겠군. 나름 어울리지도 않고 말일세. 그리 이야기하는 것이 잠 경위는 아직 여유로웠다. 공룡은 짧게 침묵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조금 더 갇혀 계실지도 몰라요.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해하세요? 공룡의 말에 잠 경위는 답한다.

 

   "나 또한 생각 없이 갇혀있는 것이 아닐세. 위험을 감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지. 난 그것을 얻기 위해 온 것일세."

 

   자, 빨리 나가도록. 지금쯤 필립 순경이 새벽 순찰을 돌 시간일세. 지금 뛰어나가지 않는다면 나가는데 까다로울 거야. 잠 경위는 그 말을 끝으로 손을 창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것이 그 둘의 마지막 대화였다.

 

 


 

 

   "여긴…."

 

   덕개는 주위를 훑었다. 자욱히 낀 안개가 덕개의 시야에 맞닿아, 퍽 습기찬 느낌을 받았다. 옅은 수면 아래로 침수하는 기분. 골라 표현하자면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무력감보다는 온 몸이 어인이 되어 본인 스스로가 물고기라도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장소가 마냥 무섭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물고기가 육지에 올랐다고 완벽히 두려움만을 느끼지 않는 기분에 가깝다.

   덕개는 손으로 주위를 매만진다. 손바닥에 닿은 감촉은 자신의 옆의 것이 나무라는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나무 기둥은 덕개를 환영하듯 흔들렸다. 그는 곧이어 하늘을 우러러본다. 하늘은 옅은 회색 빛을 띄어 안개가 온 세상을 뒤덮었음을 쉽사리 깨닫게 했다. 퍽 수상한 하늘에 퍽 수상한 공간. 그럼에도 왜일까. 기이하게도 익숙하다. 그는 멀리서 울새가 우는 소리를 마주한다. 새소리가 메아리 치게 울려 퍼지자 이 공간이 안갯속 숲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꼭 비밀의 화원 속으로 기어들어온 느낌마저 든다. 미묘한 고양감에 파묻힌다. 그리하여 걸을 수밖에 없다. 칠퍽, 바닥이 무겁고, 사르륵, 나뭇잎이 뺨을 스친다.

 

   '덕개여, 기억하고 있느냐.'

   "… …."

 

   과거는 덕개에게 물었다. 기억하고 있느냐고. 이 숲을 기억하느냐고.

 

   '아이는 언젠가 숲을 올라, 자욱한 안개 사이를 파해쳤다. 옛 된 아이는 그것을 탐험이라 불렀고, 고난은 즐거움을 논하기에 적합할 테지.'

   '그것은 기억은 당신의 기억이 아닙니다.'

   '고난을 겪음에도 아이는 발을 멈추지 않는다. 덕개여, 이미 스스로가 그 사실을 알고 있겠구나.'

   '… …. 덕개야 , 내 말을 믿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모든 게 직감일 뿐이지만. 직감은 끝내 침묵을 고수했다.

   덕개는 사실 그들의 이야기 중 절반은 흘리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다양한 것이 있을 터이지만, 가장 간단하게도 익숙했다. 이 장소가 너무나도 익숙했다. 익숙한 기분이 들고, 익숙한 향이 났다. 울새가 우는 방향으로 발을 돌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그 사이사이 아카시아 나무가 피어 둥그스름한 이파리가 뺨을 스치는 것마저도 익숙했다.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안개 속도,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은 하늘도. 그 모든 것이 익숙했고, 그 익숙함이 발길을 옮기도록 만들었다.

   직감은 상황 자체가 퍽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향하는 길이 어디라고 명백히 정답이라 할 수 없으나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그에게 있어 그리움은 그다지 좋은 기억이 아니었음을 직감은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과거를 구태여 들추는 짓을 하지 않았다. 허나 과거는 질이 달랐다. 덕개를 부추기고 안개 너머를 향해 나아가자 이야기한다.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냐. 덕개여, 기대하지 않느냐. 그 시절의 아이는 문 하나를 여는 것에도 고양감에 휩싸였다. 이런 거대한 공간 전부가 비밀스러운 정원으로 바뀌는 것에 기대하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 과거의 말에 따라 덕개는 호기롭게 발을 옮긴다. 그의 귀 끝을 속삭이는 것은 이제 직감이 아닌 과거가 되어있었다.

 

   '덕개여, 이 근처에서 마주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비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현재 당신의 기억은 왜곡된 기억입니다.'

   '마주했던 것은 환상이라 불리어도 올바른 단어일지 모른다.'

   '당신은 그러한 물건을 직접적으로 얻은 기억이 없습니다.'

   '덕개여, 과거란 곧 흐름이다. 흐름을 멈추어 보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아름다움에 멈추어 본 것이 아니더냐.'

 

   통찰은 덕개에게 이 모든 것이 꿈임을 알리고 싶었다. 그 모든 것은 거짓되고 왜곡된 기억임을 알리고, 이 꿈에서 깨어나야만 한다 답하고 했다. 허나 과거는 그것을 그저 지나가게 두지 않는다. 현재로 마냥 흘러가기에 과거는 그 시절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알고 있다. 덕개 또한 그러했다. 현재 풀어내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덕개는 더더욱 과거에 옮매이고 싶어했다. 해야할 것이 많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퍽 어려운 것이었다. 언제나 현실에 충실하다는 것은 모순된 이야기다.

   덕개는 과거의 말을 쫓아 땅을 바라본다. 덕개의 뒤쪽으로 한 아이가 달려나왔다. 뿌옇게 흐려진 안개 사이, 아이는 땅에서 무언가를 파묻는다. 자신의 주머니 속, 꽁꽁 숨겨둔 구슬. 아이는 자신의 주먹만한 구슬을 소나무 아래에 묻고, 돌을 쥔다. 나무에 돌로 그어내린다. 엑스 표시를 남김으로써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를 공간을 만들어낸다. 물안개는 기묘하게 동백의 향이 났다. 겨울도 오지 않았는데 풍기는 짙은 동백의 향은 덕개의 체향을 지워냈다. 서서히 씻겨내려간 체향에도 덕개는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꼬마를 바라보았다.

 

   "… …. 잠뜰 누나. 여기 있죠?"

   "넌 기척 하나 없는 나를 어떻게 이렇게 잘 찾는지 모르겠다니까."

   "제가 누나한테 당한 게 많아서 그래요."

 

   덕개의 뒤로 과거가 훑었다. '소년에게 동백은 희(喜)이며 기(記)이다. 소년에게 안개는 시작을 뜻했다. 덕개여, 기억하는가. 찾아내고자 했던 시작을 말이다.' 속삭이는 목소리를 끝으로 모든 말이 잦아들었다. 그들의 대화에 더 이상 과거도, 직감도, 통찰도 필요치 않았다.

   덕개는 가만히 멈추어 자신의 옆으로 다가오는 이를 오도록 두었다. 숨소리도, 발소리도 내지 않는 그것을 보고서도 퍽 살아있는 이와 같다 덕개는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누나'라는 호칭을 내어주는 것이다. 호칭을 통해 둘은 서로가 어느 상태이든 유대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잠뜰은 덕개의 호칭에 큰 말을 전하지 않는다. 오랜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기억 저편으로 누군가 서럽게 울었다. 그 날은 박씨 집안에 강아지 한 마리가 이 땅을 떠나간 날이었다.

   덕개는 가만히 서서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는 신이 난 표정으로 뛰어내려간다. 이러면 잠뜰 누나가 가지 않을거야. 퍽 유치하고 어린아이 같은 상상이 아닐 수 없다.

 

   "찾고 싶었니?"

   "왜인지 동백의 향을 맡으면 그리워져서요."

   "내 구슬을 쥐고 잘도 그러는구나."

   "이것도 누나에게 배운 셈이죠."

 

   덕개는 이기적이나 잠 경위보다 잠뜰을 더 찾고 싶었다. 명쾌하게도 덕개의 오랜 기억 속, 파묻어둔 추억이 고개를 들이밀었으니. 그 먼 옛날의 어린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하며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의 속삭임은 퍽 달콤했다.

   그리하여 수면 위로 올라온 그것을 싫어할 수 없었다. 과거의 말 따라 과거란 즉 흐름이었다.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나 관찰자로서 그것을 그저 흐르게 두는 것은 퍽 아쉬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붙잡고만 것이다. 말마따나 아이에게 동백이란 희(喜)이며 기(記)였으니까. 그 향의 근원지까지 와서 멈출 수 없었다.

 

   그럼에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그것을 그리도 바라는가. 그런 질문에 덕개는 명쾌히 하나라 답할 수 없었다.

   흐름이란 의의를 갖지 않는다. 별과 같이 하늘에 떠있던 것에 사람이 의미를 부여하듯, 흐름 또한 같은 것이었다. 너무 아름다워 잊기 싫은 것도, 너무 괴로워 잊히기 어려운 것도. 그 모든 것이 관찰자의 주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덕개는 그럼에도 꼽자면,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잊힌 기록 속으로 자신이 어떤 주관을 갖고 있었는지. 그리하여 현재를 두고 돌아설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덕개야, 이 숲이 무슨 숲인지 기억하니?"

   "아뇨…. 온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이건?"

 

   잠뜰은 덕개의 앞을 걸어 나갔다. 손으로 가볍게 안개를 밀어내자 공기 중의 뿌옇게 뜬 안개가 잠뜰의 손을 따라 흩어져 내렸다. 하늘이 생각보다 푸르다. 마냥 회색에 갇혀있던 덕개는 채색된 하늘에 잠시 넋을 놓았다. 급히 뒤를 돌아보면 세상은 또다시 회색으로 뒤덮여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꿈임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잠뜰은 그런 덕개를 두고 여전히 걸음을 재촉했다. 덕개는 급히 잠뜰을 뒤쫓는다. 어디가는 거예요? 덕개의 물음에 잠뜰은 아무런 말도 전하지 않는다. 살랑이는 아홉의 여우 꼬리만이 덕개를 반겼다. 꼬리 끝이 퍽 푸른 빛을 머금었다. 덕개는 잠뜰의 꼬리만 졸졸 쫓아 나선다. 그때도, 지금도. 별 반 다를 게 없다. 나아가 현재와도 다를 것이 없다. 덕개는 어느 날부터인가 잠뜰, 그리고 잠 경위의 뒤만 쫓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동경이라는 이름 아래 밤낮없이 뒤쫓았다. 남들보다 일찍 행동하고, 남들보다 열정적으로 임한다. 그럼에도 쫓기 버거운 상대란 퍽 존재하는 법임을 덕개는 알고 있다.

 

   "자, 여기가 어딘지 알겠니?"

   "… …. 신선동…?"

 

   덕개는 신선 산책로의 표지를 확인한다.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환각과도 같은 감각이 사그라들었다. 꿈이라 생각한 것들이 갑작스레 현실감으로 몰아친다. 깨어있는 것인지 잠들어있는 것인지. 도통 답을 알 수 없다. 분명 과거를 탐미하려 쫓았거늘, 어느 순간 현실로 되돌아옴에 덕개는 여전히 잠뜰을 쫓았다. 잠뜰 홀로 과거의 존재임을 확인한다. 그럼에도 지금 본인이 잠들어있는지, 깨어있는지 알 수 없다.

   잠뜰은 덕개를 이끌고 언덕 너머, 숲으로 들어왔다. 서서히 피어나는 안개 사이로 밤이 드리웠다. 드높은 장천에 밤이 내리깔린다. 저 멀리 샛별이 반짝, 자신이 있음을 알린다. 나아가 저 멀리 떠돌이별이 고개를 내민다. 그 모든 것이 열 보 안에 벌어진 일이다.

   잠뜰은 여전히 나아간다. 이쯤 되니 그는 과거가 현재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덕개는 슬슬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언덕을 넘어 산을 넘나들고 있다. 별로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어째서일까.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피어났다. 습기찬 밤의 탓이라 보기엔 조금 미묘했다. 어째서일까. 덕개는 이 순간이 오롯이 꿈이라고 볼 수 없다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잠뜰이 걸음을 멈춘다.

   지하 벙커 앞에 멈추어 섰다.

 

   "… …. 여기가 어디예요?"

   "네가 가야 할 곳이지."

   "에? 그게 무슨-,"

 

   그 순간, 벙커에서 누군가 뛰어 올라온다. 공룡, 공룡이다. 그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덕개와 잠뜰은 보이지 않는 듯, 입을 틀어막고 중얼대기 시작했다. 손을 쥔 채, 고뇌하는 그를 바라본다. 안에 잠 경위님이 있어. 수사반으로 돌아가서, 돌아가서. 공룡은 잠시 말을 멎는다. 사이비 그 놈들을 모조리 파해쳐야해. 그는 중얼중얼 한참을 고뇌했다. 손등으로 입가 주위를 닦아냈다. 온갖 식은땀이 그의 얼굴을 덮었다. 그는 그것을 아마 모르는 듯싶었다.

 

   "… ….  잠-,"

 

   덕개는 공룡을 바라보다 잠뜰을 찾았다. 고개를 돌리면, 이제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이 자신이 향해야 할 곳임을 깨닫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통찰은 덕개의 옆을 스쳐 지났다. 짧게 바람이 불었다. '이것은 당신의 현실이 아닙니다.' 그 뒤로 직감이 그를 흘겼다. '그럼에도 덕개, 네 현실이 될 거야.' 저 멀리 안개를 되뇌던 과거는 여실히 곱씹고 있었다. 이제 덕개에게는 그 과거가 조금 더 먼 존재로 느껴졌다. 통찰의 말 탓일까. 정말 자신이 겪지 않았던 일을 되뇌는 기분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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